도서리뷰 / / 2023. 3. 11. 22:02

사기_본기편 도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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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시리즈 책 리뷰입니다.

 

 

사진처럼 두껍고 많은 양이지만 사마천 일생의 걸작이라 한번 쯤은 읽고 싶었습니다.  

어디 가져가서 읽는다는 건 꽤나 두껍기에 불가능하지만 집에서 집중하여 읽기에 참 좋습니다.

요즘은 이북이나 태블릿을 이용하여 많이들 독서하지만 아직 저는 종이가 좋네요.

옛날 사람처럼… 하핫

 <사기>는 전설시대에 속하는 오제시대부터 하-은-주-춘추-전국-진-초한, 그리고 사마천 본인이 살았던 전한 무제까지를 기전체로 서술한 역사서입니다.

중국 고대사 연구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고 문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뛰어난 책이에요.

 

 중국 24사란 무엇일까?

 중국에서는 전한시대 사마천이 <사기>에서 기전체라는 기록 양식을 창시한 이래, 한 왕조가 멸망하면 그 뒤를 이은 왕조에서 전 왕조의 역사서를 기전체로 편찬하는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이를 ‘정사’라고 하며, 보통 한 왕조에서 한 개의 정사가 편찬되지만 혼란기인 경우에는 여러 왕조와 지방정권을 묶어서 하나의 시대로 편찬되기도 하며(ex:삼국지, 오대사 등), 앞서 편찬된 정사의 퀄리티가 미흡하다고 하여 새롭게 쓴 경우도 있습니다(ex:구당서와 신당서, 구오대사와 신오대사). 정사는 청나라 때 최종적으로 흠정 24사로 정리되었으며 현대에 작성된 신원사, 청사고 등을 포함해 25사, 26사라고도 하지만 보통 전통적인 정사로는 흠정 24사를 말합니다.

 

 흠정 24사 목록이란?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송서, 남제서, 양서, 진서, 위서, 북제서, 주서, 수서, 남사, 북사, 구당서, 신당서, 구오대사, 신오대사, 송사, 요사, 금사, 원사, 명사이며

 유감스럽게도 국내에 한국어 완역본이 나온 것은 사마천의 <사기>를 포함해, 진수의 <삼국지>, 토쿠토 테무르의 <요사> 딱 3종류 뿐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역사공부의 기본이 되는 정사를 우리말로 읽기 힘들다는 점은 참 아쉬운 일이에요.

 

사마천의 일생을 들여다보자!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전후에 사관 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전한의 수도인 장안에 와서 동중서와 공안국에서 학문을 배웠고 스무살 무렵부터 중국 전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돌아온 후 벼슬길에 올라 낭중에 올랐습니다. 기원전 108년, 태사령이 되어 한무제를 시종했으며 천제에게 제사드리는 봉선에 참여하고 역법을 개정하였으며, 기원전 104년에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고자 정식으로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인생에 커다란 암운이 드리운 때가 있었으니, 바로 기원전 99년의 일이었습니다. 장군 이릉이 흉노와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때 홀로 한무제 앞에서 이릉을 변호하다가 노여움을 사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당시 한나라의 법으로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는 속죄금 50만 전을 내거나 궁형(남성을 거세하는 형벌)으로 대신하는 방법 뿐이었는데, 대단한 권세가가 아니었던 사마천이 1년 군자금과 맞먹는 거액의 속죄금을 낼 수 있을리 만무했고 궁형은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사회적인 명예의 실추는 죽음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으로 여겨졌지만, 사마천은 오로지 <사기>를 완성하겠다는 일념으로 궁형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때의 마음고생은 후에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인 ‘보임안서’에 잘 드러나 있지요.

 기원전 93년, 사마천은 마침내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 지 20년 만에 <사기>의 집필을 마무리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임안서란?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인 ‘보임안서’는 사기<본기>의 말미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더군요.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선비가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다가 오히려 벌을 받는 일보다 더 참혹한 화는 없고, 마음을 상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고,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동은 없고,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도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도 가볍다…(중략)… 치욕을 당하는 순으로 이야기하면 가장 못한 것이 극형 중의 극형인 궁형을 당하는 것.”

 

 “고통을 견디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한 채 치욕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마음속에 아직 다 드러내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잘것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후대에 내 문장이 드러나지 못하면 어찌할까 하는 한이 그것이다…(중략)… 좌구명처럼 눈이 없거나 손빈처럼 발이 잘린 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그들은 물러나 책을 써 분한 생각을 펼침으로써 문장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아아… 고통을 견뎌내고 불후의 명저 사기를 완성해 낸 사마천에게 박수를… ㅜㅜb

 

사기의 구성은?

 사기는 본기 12권, 표 12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으로 총 13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기>는 천자의 기록, <세가>는 제후의 기록, <열전>은 그 밖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고 <표>는 도표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연표이며 <서>는 당대의 생활상이나 제도, 풍속 등의 사회사 기록입니다.

 

 

[본기]

 

 총 12권으로 구성된 본기는 오제시대부터 한무제까지의 역대 제왕들의 사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권1. 오제본기 – 오제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제왕으로 황제 헌원과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제요 방훈, 제순 중화를 말합니다. 흔히 태평천하의 상징으로 드는 “요순시대”가 바로 제요 방훈과 제순 중화의 치세이지요. 특이하게도 황제 헌원의 본기에 “치우”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네 아실분들은 아시겠지만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마스코트로 쓰였던 그 치우천황입니다. 황제가 탁록에서 잡아죽인 포악한 반군의 두령 치우가 바다건너 한국에서는 한민족의 시조로 둔갑했던 겁니다. 혹시나 아직도 민족의 조상 치우천황이 어쩌고 하는 사람이 없기를…… 물론 황제건 치우건 고고학적 근거는 없는 전설상의 인물들입니다.

 

권2. 하본기 – 하나라 역시 전설상의 왕국에 불과하나 사마천은 역사속의 왕국으로 간주했습니다. 후의 ‘귀책열전’등과 더불어 <사기>전체에서 가장 가치가 떨어지는 권이라 평할만하나, 흥미로운 전설 쯤으로 가볍게 넘겨볼만은 합니다.

 

권3. 은본기 – 중국 최초의 고대왕국은 바로 은나라(상나라라고도 함)입니다. 은나라 역시 하나라처럼 전설속의 왕국으로 여겨졌으나, 20세기 초반 중국 하남성에서 은나라 말기 도성의 유적인 ‘은허’가 발굴됨으로서 그 존재가 사실로 증명되었지요.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으로도 매우 유명합니다.

 

권4. 주본기 – 주나라는 은나라를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입니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이 달기라는 미녀에 빠져 주지육림을 만들고 포락의 형(불에 달군 구리기둥 위에 죄인을 걷게 하는 형벌)을 보며 즐기는 등 폭정을 거듭하자 주나라의 서백 희창(문왕)의 아들 희발(무왕)이 회수가에서 낚시를 하던 노인 강태공을 군사로 삼아 정변을 일으켜 주나라를 세웠다고 하지요. 당시 주나라는 제후들의 연맹체 정도로서 중국 전토를 중앙집권화할 만한 권세는 없었다고 보며, 지방 영토는 분봉하여 제후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는 ‘봉건제’를 실시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지방제후들의 위세가 커지고 주나라 왕실은 이름뿐인 것으로 전락해 춘추전국시대로 나아가게 됩니다.

 

권5. 진본기 –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 중 하나로 일약 강국으로 발돋움 한 것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진효공 시절로, 법가사상가 상앙을 기용해 변법을 추진하면서부터입니다. 진나라는 군사에 수완을 보인 소양왕을 거쳐 그의 손자 진왕 영정이 천하를 통일하고 중국 최초의 황제, 즉 시황제를 선언하면서 최초의 통일제국이 됩니다.

 

권6. 진시황본기 – 사마천은 춘추전국시대의 진본기에 이어 진시황본기를 곧바로 편제하여 통일제국 진의 사적을 기록했습니다. 시황제는 전국에 군현을 설치해 중앙집권을 꾀하고,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만리장성을 축건하고 법가사상에 의거한 엄격한 통치를 하며 유학을 탄압하여 분서갱유와 같은 일도 벌였습니다. 진나라의 군사력은 강성했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아, 진시황 사후 가혹한 형법에 숨죽이고 있던 세력들이 여기저기에서 들고 일어나 통일 진 제국은 불과 3대 15년만에 막을 내리고 중국은 초한쟁패기에 돌입하게 됩니다.

 

권7. 항우본기 – 항우는 진나라 말기의 군웅으로 진시황제가 붕어하고 진승의 난을 기점으로 천하에 전란이 일어나자 숙부 향량과 함께 거병하여 초나라의 부흥을 꾀한 인물입니다. 진나라의 도성 함양에 진격해 진의 3대 왕 자영을 죽이고 아방궁을 불태웠으며 힘을 보탠 제후들에게 분봉한 뒤 자신은 서초패왕을 칭했으나 후에 적이 된 한왕 유방과 투쟁을 펼친 끝에 패하여 생을 마쳤습니다. 명마 오추를 타고 전장을 누빈 천하무쌍의 영웅호걸이자 우희와의 로맨스도 유명하여 훗날 수없이 회자되며 “패왕별희”등의 경극이나 “서초패왕”, “초한지”등 소설과 TV, 영화 등으로 각색된 파란만장한 인물이지요.

항우가 유방군에 쫓겨 사면초가(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림)의 절망적인 상황에 몰려 우희를 보내며(패왕별희) 부른 “해하가”를 소개해봅니다.

-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해

- 시운이 불리하니 추도 나아가지 않는다

-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좋은가

-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하란 말인가

 

권8. 고조본기 – 고조본기는 한제국의 창시자 유방의 사적입니다. 진시황 사후 천하의 패권이 항우에서 유방으로 넘어갔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며 사마천 본인이 속한 나라의 시조인 만큼 신화적인 내용이나 미화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천하통일을 달성한 후 공신들을 숙청하는 ‘토사구팽’ 역시 가감없이 서술함으로 역사가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방은 천하가 진나라의 것이 된 시기에 옛 초나라 땅의 패현이라는 조그마한 고을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 않고 유협(=불량배)들과 어울리기만 했다고 합니다. 진시황제가 죽고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군웅들이 호응, 유방도 향리와 청년들의 추대를 받아 항량의 군대에 가담하면서 두각을 드러내었고, 성격이 포악한 항우가 북방에서 진나라의 진압군을 막아내는 사이 먼저 진나라의 도성 함양에 입성했습니다. 후에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한신과 장량, 소하 등의 보좌를 받아 마침내 승리하여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게 되지요.

유방은 본인의 능력은 보잘것이 없지만 인덕이 깊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중국식의 영웅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인물로 삼국지의 유비, 수호전의 송강 등이 있고 현대의 마오쩌둥도 예를 들만 합니다.

 

권9. 여태후본기 – 여태후는 고조 유방의 황후로 보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유방의 사후 사실상 여제로서 군림했던 여장부입니다. 혜제나 소제 등 여태후 소생의 황제들이 있기는 했으나 여태후의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사마천도 여태후를 실질적인 황제로 보아 과감하게 고조 다음으로 여태후본기를 편제하였습니다.

여태후본기에서 인상깊은 대목이라면 단연 ‘인간돼지’ 이야기일 것입니다. 한고조의 사망 후 천하를 손아귀에 쥔 여태후는 고조가 생전 가장 총애하던 첩인 척부인에게 매우 잔혹한 보복을 가했는데, 산 채로 수족을 자르고, 눈을 뽑고, 음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든 다음 귀에 유황을 부어 귀머거리로 만들어서 돼지우리에 던져놓고 이를 가리켜 사람돼지란 뜻인 '인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황제인 아들 혜제에게 이를 보여주었는데, 그 참혹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혜제는 그날로 몸져 누워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요절했다고 하지요. 여자의 질투심이 얼마만큼 무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습니다.

 

권 10. 효문본기 – 여태후의 사후 조정을 농단하던 여씨 일족은 주발과 진평 등의 개국공신들에게 숙청의 철퇴를 맞고 고조의 사남 유항이 황제로 추대되니 그가 바로 한문제입니다. 한문제는 전한과 후한 400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성세를 이룬 이른바 ‘문경지치’를 연 인물로 왕정국가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성군’이라는 개념에 딱 걸맞는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겸허한 자세로 절약을 몸소 실천하면서 가혹한 부세를 감면하고, 연좌제와 순장 및 신체절단형 등의 혹형을 폐지하는 등 덕치를 실시했습니다. 대외정책에서도 전쟁에는 많은 물자가 소비되고 장병들이 목숨을 잃는다 하여 흉노와 화평하는 한편 그의 치세에는 단 한번도 대규모의 토목공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니 전설속의 왕들인 요순을 능가하는 진정한 성군이라 할 것입니다.

 

권 11. 효경본기 – 한문제의 아들인 한경제의 사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기 가운데 가장 분량이 짧은데, 전하는 과정에서 소실된 것을 후대에 <한서>의 경제기를 토대로 요약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간략한 사실의 나열에 그치고 있어 확실히 읽는 맛이 떨어지더군요. 한경제는 부황의 선정을 이어 ‘문경지치’라 불리우는 한나라의 태평성세를 유지시킨 명군입니다.

 

권 12. 효무본기 – 사마천의 시대에 제위한 한무제의 사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한무제는 실크로드를 발견하고 흉노를 토벌하였으며 남월과 대완을 멸망시키는 한편 우리 역사에서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황제로도 유명하지요. 또한 전한의 법령을 완성시키고 관료체계를 완비하며, 염철전매법, 균수법, 평준법 등의 경제정책을 시행하는 한편 유학을 국학으로 삼는 등 굵직굵직한 업적들이 많아 현대까지도 당태종이나 강희제 등 중국의 역대 제왕을 꼽으라고 하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황제입니다만…… 사마천이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효무본기에 나타나는 한무제의 모습은 마치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 말기의 모습이 겹쳐지는 그런 미신에 빠진 폭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어디서 방술사가 용하더라. 하면 그를 불러서 방술을 시키고 신통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처형하고 또다른 방술사를 모집하고… 마지막까지 신선이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제왕의 원초적인 욕구가 그대로 효무본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리뷰를 남기고 내일은 이어서 리뷰를 들고 오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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